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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태극기
꿈과 미래가 실현되는 역동적인 정선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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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읍

정선읍은 고구려때 잉매현, 신라때 정선, 고려때 삼봉(三鳳), 도원(桃原), 심봉(沈鳳)등 군명이 자주 바뀌었다. 공민왕2년(서기 1353년)에 군명이 다시 정선으로 개칭되어 조선 500년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본 군의 군청 소재지로서 정치, 행정,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어천(漁川), 병목(甁項), 오반(五半), 송오(松五), 외반점(外半占), 북실(北室), 생탄(生呑), 상동(上洞), 중동(中洞), 하동(下洞) 등 10개 동으로 구획하고 면행정을 처리하던 것을 1906년에 면장제도로 개편하는 동시에 동하면(東下面)을 합쳐 정선면(旌善面)으로 개칭하였다. 1924년에 서면(西面)을 합하였고, 1973년 7월 1일자로 정선면이 정선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봉양리 (鳳陽里)

정선읍 소재지인 봉양리(鳳陽里)는 주산인 비봉산 남쪽 일대와 민둥산 남쪽 조양강변과 골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남한강 상류인 조양강이 흐르고 있으며, 비봉산 맞은편인 조양강 건너편으로는 남산이 있다.
1353년(공민왕 2) 군 이름이 주진(朱陳)에서 정선(旌善)으로 환원되면서군내면(郡內面)이 된 지역이다. 본래 정선군(旌善郡) 군내면(郡內面)에 속한 지역인데, 1914년 3월 1일 시행한 조선총독부 행정구역개편령 제111 호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동(上洞), 중동(中洞), 하동(下洞)을 통합하고 여기에 관음(觀音), 세대(世垈), 생탄(生呑)을 더하여 비봉산(飛鳳山)과 조양강(朝陽江)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봉양리(鳳陽里)’라고 했다.
조양강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동천과 만나 북서쪽과 남서쪽으로 크게 돌아 흐르는 퇴적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봉양리는 뒤쪽으로 봉황새가 나래를 펴고 조양강으로 내려앉는 형국인 비봉산을 주산으로 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다. 봉양리는 지형이 제비집과 같고 화암면에서 흘러들어오는 강줄기가 뱀 모양이어서 마치 뱀이 새끼제비를 잡아 먹으려하는 형국이어서 이를 막기 위해 오래 전 세 마리 거북을 어천방면과 상동, 하동 강변에 묻고, 여덟마리 학을 조각하여 비봉산(飛鳳山)과 조양산(朝陽山)에 묻었다고 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85년도에 정선 조양회에서 정선아리랑 공원에 삼구팔학비(三龜八鶴碑)를 세웠다.
봉양리는 1605년도 대홍수로 조양강의 물길이 바뀌어 넓은 백사장을 이루었는데 그 후 몇 차례 홍수가 나면서 퇴적지형이 되었다고 한다. 정선 제방은 1936년 대홍수로 대부분의 집들이 유실된 후 처음 쌓았으며, 1961년에 현재 모습의 제방이 완성되었다.
봉양리의 자연마을로는 읍내를 중심으로 하는 상동, 중동, 하동과 함께조양강변의 적거리, 관음동, 오리정, 세대 등이 있으며, 산간 마을로 동곡, 생탄 등이 있다.
봉양리는 42번 국도와 59번 국도가 이어져 강릉, 평창, 태백과 영월로 70 정선읍 지명유래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현재 봉양리에는 군청과 경찰서를 비롯해 초중 고등학교와 우체국, 농협등이 있으며, 2·7일마다 정선5일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정선5일장은 조선시대부터 매월 4, 9일 열렸으나 1897년부터 매월 2, 7일 열린 장으로 정선읍 인근에서 나오는 각종 물산이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1990년대부터 정선5일장은 재래시장으로서의 기능은 물론 멋과 흥겨움을 전하는지역 관광 상품으로 외지 관광객을 불러 모아 지역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봉양리는 현재 2,048가호 2,823명(2012년 5월 31일 기준)의 주민들이대부분 상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