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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태극기
꿈과 미래가 실현되는 역동적인 정선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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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을 빛낸 인물을 소개해 드립니다

천혜의 자원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선에 뿌리를 두고 정선을 빛낸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고려개국공신 전 이 갑

전공(全公)은 휘(諱)는 이갑(以甲)이요. 자는 자경(子經), 장호(腸號)는 도원(挑源)으로 정선사람이다. 정선전씨 중시조 정선군(中始祖 旌善郡) 휘선(諱宣)의 7세손 휘우상(諱禹相)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公)이 태어날 때 그 어머니 꿈에 푸른 옷을 입은 세 노인이 한 아이를 안 고와 주면서 『"이 아이는 장차 명예와 공(功)이 한나라에 충만하리니 잘 보호하여 키우라."』는 이야기를 하고 사라졌다. 그후 태기가 있어 공(公)이 출생하였는데 태어날 때 온 집안에서 서기(瑞氣)가 충만하여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으며, 공(公)이 자라면서 부터는 용모가 빼어나고 지용(智勇)이 절륜(絶倫)하여 문사(文詞)에도 통달(通達)하시었다.

공(公)의 동생 의갑(義甲) 또한 그 어머니가 기이한 꿈을 꾸고 낳았으며 훌륭히 자라니 그때의 사람들이 두 영웅(英雄)이라고 칭찬하였다.

공(公)의 벼슬이 기랑(騎郞)이 되었을 때 왕건(高麗太祖)을 만나니 왕건(王建)이 그 임물됨을 알아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세상의 영웅(英雄) 이라 삼수(三秀)의 창생(蒼生)들이 크게 구제(救濟)하기를 기대(期待)한다〕고 하였다.

그후 왕건(王建)을 왕(王)으로 모시고 고려(高麗)를 세우니 무우년(戊牛年)에 양주(楊洲)를 정벌하여 평정하고 경신년(庚申年)에 광청주(廣靑州)등지를 정벌하여 적을 전멸하고, 병인년(丙寅年)에 견훤을 상주(尙州) 에서 몰아 내고 그 땅을 개척하였으며 정묘년(丁卯年)에 또 견훤을 라주(羅州)에서 대파(大破)하여 진(陳)을 설치하고 돌아오니 그때에 태조왕건(太祖王建)의 이름이 크게 떨치어 조정과 백성이 모두 그를 따르게 되었다.

태조(太祖)3년에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므로 신라의 사신 금율(使臣 金律)이 와서 도와줄 것을 간청하여 태조(太祖)가 공(公) 신숭겸(申崇謙)에 명(命)하여 정기장군(精騎將軍)을 삼아 가서 구원(救媛)케하니 견훤이 그 소문을 듣고 싸우지도 않고 퇴각(退却)하였다.

이때 공(公)이 신숭겸(申崇謙)에게 이르기를 견훤이 강폭(强暴)해서 항상 변방의 우환꺼리가 되니 이 기회에 그를 전멸시킴이 좋겠다 하고 그를 끝까지 쫓아 추격하니 그의 군사는 거의 전멸하고 견훤만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쳤다.

태조(太祖)8년에 공(公)으로 하여금 태사(太師)를 삼았으며 태조(太祖)10년(年)에 다시 견훤과 달성(達成) 팔공산 오동나무 숲에서 격전하다가 드디어 패(敗)하여 궁지에 몰리었다.

견훤이 포위하고 맹공을 가하므로 사태가 위급한지라 태조(太祖)와 옷을 바꾸어 입어 왕(王)을 탈출시키고 공(公)은 동생 의갑(義甲), 사촌동생 낙(樂)과 더불어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후 태조(太祖)가 크게 슬퍼하시며, 공(公)에게 정선군 봉호(旌善郡 封號)와 시호(諡號)를 충열(忠烈)이라 내리시고, 공(公)의 동생 의갑(義甲)에게는 죽산군 봉호(竹山君 封號)와 시호 충강(諡號 忠康)을 사촌동생 낙(樂)에게는 천안군 봉호(天安君 封號)와 시호 충달(諡號 忠達)을 내리시고 후손(後孫)에게는 조세와 각종 국가의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이 삼충공(三忠公)의 忠行을 기리기 위하여 그 후손들이 1933年 화암면 석곡 2리에 삼충사(三忠詞)라는 제당(祭堂)을 지어놓았다.